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스니 무바라크 (문단 편집) == 독재 == [[파일:external/i2.media.daumcdn.net/20120620101005018.jpg|width=500]] [[파일:mubarak-american-presidents1.jpg]] -- 화질 차이를 보라 -- 무바라크가 얼마나 오래 집권했는 지 보여주는 사진.[* 맨 아래부터 미합중국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41대 대통령 [[조지 H. W. 부시]],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 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 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다. 레이건이 1981년부터 대통령을 했으니 기간이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자고로 박정희 대통령이 18년 집권했으며, [[블라디미르 푸틴]]은 현재 23년째 집권중이다.] 하지만 그 역시 사다트와 똑같은 권위주의자라서 내부적으로는 철권 통치가 진행되었는데 사다트 대통령의 암살 이후 선포된 [[계엄령]]을 국가비상조치법이라는 이름으로 '''상설화'''해버렸으며 이를 바탕으로 무바라크에게 조금만 반기를 들어도 [[탄압]]해버리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실제로 무바라크 집권 당시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등 주요 도시에는 무장 경찰이 각 블럭마다 배치되어 시민 및 방문자들의 동향을 지켜보곤 했다. 또 선거 때마다 무바라크는 90%가 넘는 지지율로 당선되었고[* 선거인 명부를 조작해 '''사망자'''들이 여당에 투표한 것처럼 조작했다고 한다.] [[여당]]인 국민민주당은 과반을 넘어선 초과반의석을 확보했다. [[야당]]인 [[무슬림 형제단]]이 돌풍을 일으켰을 땐 '''[[정당]] 해산''' 조치로 대응했다(...) 거기에 부유층들이 국가 기간산업을 독점해 엄청난 부를 누린 반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형편임에도 경제 분야에서 무능한 나머지 이를 개선하지도 못했다. 물론 무바라크의 통치 동안 경제 성장률과 기대 수명 그리고 문맹률 같은 문제는 일정 부분 이루어지긴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돈은 군부와 정치권, 재계를 비롯한 이른바 특권층들에게만 돌아갔고, 이집트 국민의 40% 정도가 하루에 고작 2달러도 안 되는 생활을 이어가는 극빈층이 되어버렸다. 또한 [[무슬림 형제단]]을 비롯한 야권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 또한 계속해서 가했다. 무바라크 본인이 세속주의를 추구하다보니 이슬람 광신으로 뭉친 무슬림 형제단이 달가울리가 없었다. 이런 탓에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에 의해 몇 번이나 암살기도를 당했지만 사다트와 달리 실패해 정권을 이어나갔고 나이가 들었지만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으며 '''오히려 차남인 가말 무바라크에게 세습 작업을 하는''' 양상까지 보여주었다. 2009년에는 귀여워하던 12살짜리 맏[[손자]] 무함마드의 갑작스런 죽음[* 심장에 이상이 있어 수술받다가 [[뇌출혈]]로 죽었다. 결국 이 손자의 죽음은 무바라크의 패망을 부르는 [[나비효과]]가 되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2/19/2011021900394.html|#]] 이때 이미 총기를 상실한 무바라크는 후계자격이었던 둘째 가말(무함마드의 삼촌이 된다)조차도 경계하기 시작했다고.]으로 한동안 요양하기도 하고 2010년에 담낭의 염증으로 [[독일]] 바덴바덴에서 적출수술을 받기도 해 은퇴 가능성이 있어보였지만 2010년 12월, ''''국민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 당장 은퇴할 생각은 없다'''' 라는 [[망언]](...)을 터뜨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